내가 사랑한 구이저우(贵州)
[목차]
[1] 들어가며: 조용한 감동의 땅, 구이저우로의 여행
[2] 구이저우 지역은 어떤 곳인가?
[3] 내가 여행한 구이저우성
(1) 구이양(贵阳): 변화와 전통의 교차로
(2) 황과수 폭포(黄果树瀑布群): 자연이 빚어낸 걸작
(3)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소수민족의 삶 속으로
(4) 여파소칠공 풍경구(荔波小七孔): 아열대의 숨결
(5) 진원고진(镇远古镇): 강 위의 역사를 걷다
(6) 범정산(梵净山): 신성한 자연의 세계
[4] 구이저우의 요리
[5] 구이저우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여행 팁
[6] 맺으며: 구이저우가 내게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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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3.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 소수민족의 삶 속으로
묘족 마을은 구이저우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체험 중 하나였습니다. 목조 가옥과 계단식 논, 알록달록한 전통복장을 입은 마을 사람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묘족 여성들의 화려한 은장식과 세심한 수공예품은 정말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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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서강천호묘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묘족 전통 마을로,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소수민족 문화의 보고입니다.
'천호'라는 이름처럼, 이 마을에는 천 채가 넘는 전통 목조 가옥이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펼쳐져 있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민속 박물관을 연상케 합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은 황토색 지붕들이 층층이 이어지며 형성한 장관으로, 처음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서강(西江)'은 '강의 서쪽'이라는 뜻의 지명이고, '묘채(苗寨)'는 묘족의 마을을 의미합니다. 이 마을은 카이리시 레이산현의 묘족·동족 자치구에 위치해 있으며, 묘족이라는 이름은 식물의 싹을 뜻하는 '묘(苗)'에서 유래해 쌀농사를 짓는 민족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묘족은 중국 내 소수민족 중 인구 규모로 5위에 해당하는 920만여 명으로, 그 중 상당수가 구이저우성에 거주합니다. 이 지역은 다양한 소수민족이 공존하며 문화의 다양성이 뛰어난데, 그 중 서강천호묘채는 규모와 전통 보존 면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로 손꼽힙니다. 인근의 동족 마을인 조흥동채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이 마을은 총 1,400여 가구, 약 6,0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바이수이허(白水河)라는 하천이 마을 중심을 가로지릅니다. 하천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으며,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 논과 함께 집들이 층층이 펼쳐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 같습니다.
대부분의 집은 3층 목조건물로, 1층은 거실, 2층과 3층은 주거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이러한 집들은 지금 많은 곳이 커피숍이나 민박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농사짓고 사는 집은 그 언덕위에 몇 집 없는 듯 합니다. 돈에 장사가 없습니다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서강천호묘채에는 전통적인 묘족 가옥을 개조한 민박부터 현대적인 호텔까지 다양한 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Xijiang Miao Village Resort Hotel (Observation Deck Branch)'는 마을의 가장 중심위치인 풍우교(風雨橋) 5호 근처에 위치하여 마을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Xijiang Qianhu Miao Village Mountain and B&B'는 온수 욕조와 에어컨이 완비된 객실을 제공하며, 전통적인 분위기 속에서 현대적인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숙소들은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가장 고급 숙소이죠.
저희는 민박에 하루를 묶었습니다. 시설은 허름했으나 나름 하룻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밖을 통해 묘족마을의 논과 밭, 그 풍경 정말 근사하며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논 주변을 거닐다 보면 대나무가 우거진 골목길과, 그 사이로 오리들이 유유히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한바퀴를 돌았죠. 한국의 농촌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소수민족의 삶이 지금도 고스란히 이어지는 이곳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족은 원래 중국 중원과 양쯔강 상류 지역에 정착해 있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한족과의 충돌 속에서 점차 남쪽으로 밀려나 구이저우의 산악지대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주는 단순한 이동이 아닌, 수세기에 걸친 생존 투쟁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묘족은 험한 산속에서도 자급자족하는 농업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특히 쌀농사는 이들의 생존 기반이자 정체성으로,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계단식 논과 더불어, 수확한 쌀로 떡을 찧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묘족의 전통 음식은 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산채밥, 찹쌀떡, 발효차와 같은 음식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지며, 명절이나 손님이 오면 떡방아를 찧는 의식이 함께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이 떡방아 문화는 단순한 음식 준비를 넘어, 공동체의 협력과 연대, 조상을 기리는 의미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 한국의 정서와도 닮은 점이 많아, 혹시 같은 민족의 뿌리를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쌀을 중심으로 한 식생활, 명절의 떡 문화, 그리고 집단의 협동 속에서 전통을 지켜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저희도 떡방아를 찧고 그 시루떡을 나눠먹는 체험을 해봤습니다. 꼭 한국에서의 어릴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같이 간 중국 한족들은 이런 문화가 없어 매우 신기해하더군요.
마을 골목길을 걷다 보면, 묘족 할머니들이 집 앞 작은 평상에 앉아 바느질을 하듯 천천히 자수를 놓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꽃무늬와 기하학적 문양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삶의 이야기입니다.
옆에서는 직접 만든 자수 주머니, 머리 장식, 수공예 인형 등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하나하나가 마치 전통의 숨결을 간직한 예술품 같습니다. 자수를 놓으며 미소 지어주는 할머니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마을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을 중심에는 전통 공연장이 있어 매일 묘족의 춤과 노래 공연이 열립니다. 북소리에 맞춰 추는 묘족의 원무(圓舞)는 그들의 공동체적 삶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화려한 공연이 끝난 후,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밤이 되면 이 마을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마을 입구 쪽에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서서히 조명이 켜지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1,400여 채의 집에서 동시에 불빛이 밝혀질 때 펼쳐지는 야경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관입니다. 마치 조용한 시골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야경 쇼 무대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이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하루 더 머무는 관광객도 많습니다. 하이라이트죠.
저녁 시간이 되면 마을 한편의 야시장이 열려, 다양한 포장마차가 줄지어 들어섭니다. 불빛 아래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며 마을은 또 다른 활기를 띱니다.
특히 묘족의 대표 음식인 '산채밥', 찹쌀 떡, 발효된 차 외에도 직접 구운 꼬치, 발효 어류와 채소를 곁들인 쏸탕(신맛 탕), 찐 옥수수떡, 고추를 듬뿍 넣은 볶음요리 등 이 지역만의 향토 음식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사탕과 구운 고구마를 들고 종종거리며 뛰어다니고, 노인들은 간이 테이블에 앉아 차나 술 한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눕니다.
이 작은 야시장은 단순한 시장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삶과 전통, 미각의 향연이 어우러지는 또 하나의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밤 12시까지 영업을 하고 말끔하게 철수 정돈한후 다음날 6시에 다시 점포를 열더군요. 이렇게 관리를 해야 통제가 잘 되는 거겠죠.


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중국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묘족의 전통 의상을 대여해 입고 거리를 걷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화려한 전통 복장을 대여해 주는 상점이 많으며, 주로 하루 300위안(한화 약 6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대여할 수 있습니다.
의상은 주로 묘족 여성의 전통 복식인 자수 장식이 화려한 상의, 주름이 풍성한 치마, 그리고 반짝이는 은장식 장신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화관이나 은으로 만든 머리장식을 더해 전통적인 멋을 한껏 살립니다.
의상을 입고 돌담길이나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마을의 정취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의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색다른 전통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비용을 좀 더 지불하면 전문 사진사가 몇시간 동행하면서 찍어 줍니다. 의상을 입기전에 당연히 화장도 열심히 합니다. 결혼식 신부처럼 말이죠. 엄청 행복해하는 모습들입니다. 기분만 좋으면 된 거죠.
저희는 중국 여행사를 이용하다 보니 전통의상을 대여해주고 사진을 찍는 시간을 주더군요. 일행들이 정말 행복해 합니다. 우리 여성분들 사진에 진심입니다. ^^


구이저우(贵州)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
나는 마을 골목길을 걷다가 어느 노인과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고, 내가 다가가 말을 건네자 천천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여기 삶은 불편하지만, 자유롭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도시의 편리함과 바쁜 삶 속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삶의 가치가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죠.
묘족의 은장식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한족과의 충돌 속에서 끊임없이 이주를 반복했던 묘족은,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전 재산을 은 장신구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화려한 그 장신구들은 사실 아픈 역사의 산물이며, 그 위에는 자신들의 역사와 문양을 새겨 넣어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들의 조상이라 불리는 치우 황제는 고대 중국 전설 시대의 인물로, 묘족뿐 아니라 여러 소수민족의 정신적 뿌리로 여겨집니다.
그는 신농씨의 후손으로 강철과 무기를 만들 줄 알았고, 구름과 안개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한족의 조상이라 불리는 황제(黃帝)와의 전쟁인 탁록 전투에서 패한 뒤 사라졌습니다. 이 패배 이후, 치우는 전쟁의 신으로 신격화되었고, 묘족은 물론 동남아로 이주한 몽족, 라오족들까지 그를 숭배하며 제사를 지냅니다.
치우의 형상은 뿔 달린 투구, 붉은 갑옷, 도깨비 같은 얼굴로 묘사되는데, 이는 오늘날 한국 축구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가 사용하는 마스코트 형상과도 닮아 있어 흥미롭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고대 동이족이나 고구려 유민들의 남하와 연결 지으며, 묘족과 한민족의 기원에 교차점이 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학술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이런 유사성은 여행자의 감성에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묘족들은 이러한 신화를 단지 과거의 전설로 여기지 않고, 지금도 치우 황제를 기리는 제사를 통해 공동체의 단결과 정신적 유산을 지켜갑니다. 이는 단순한 민속을 넘어선 정체성과 생존의 상징이 되어, 그들의 삶을 하나로 묶는 강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동남아까지 이주하며 베트남, 라오스에서도 '몽족'으로 불리며 살아왔고, 베트남의 몽족들은 베트남 전쟁때 미국을 도왔기 때문에 전쟁 종식 후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처럼 묘족의 역사와 문화는 단순한 민속이 아니라, 중국 땅의 살아 있는 인류학적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강천호묘채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구경이 아닌, 문화와 역사, 사람과의 진한 교감을 남긴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삶의 한 장면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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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김일권
한국에서 기업인으로 30년을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
중국에서 17년을 근무하며 중국 각지의 숨은 매력을 여행자로서, 때론 현지인처럼 살아보며 경험했다.
특히 구이저우에서의 여행은 인생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삶의 깊이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 특별한 여정이었다.
이 책은 그의 다섯 번째 중국 여행 에세이이자, 진심으로 전하는 ‘느림의 미학’이다.
김일권 여행작가 /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네이버 블로그 : 찐종여행기 / 티스토리 : 챕터투 Evergreen
유튜브 : 챕터투 Evergreen (김상무 중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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