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요리 여행기 – 향신료와 허브로 만나는 또 하나의 베트남
이번 여행에서 저는 음식을 통해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시장에서 재료를 고르고, 작은 식당에서 직접 요리를 맛보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훨씬 더 깊고 따뜻했습니다. 여행은 때로 새로운 것을 보러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에게 이번 베트남 여행은 **‘음식을 통해 삶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배움의 흔적입니다. 베트남 음식은 멀게만 느껴졌던 이 나라를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고, 한 그릇의 국수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결국 문화와 사람, 그리고 그들의 철학까지 엿보게 해주었습니다.여행보다 더 가까운 베트남. 그곳으로 떠나는 가장 감미로운 방법은, 바로 음식입니다. 3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
📘 시리즈 1편: 여행보다 먼저, 식탁 위의 베트남
1. 베트남 요리란?
처음 베트남을 찾았던 건 무더위가 절정이던 7월, 하노이였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지칠 대로 지친 오후, 도심 한복판을 걷다가 무심코 들어간 골목의 허름한 식당. 낯선 향신료 냄새가 풍기던 그곳에서 ‘퍼(Phở)’ 한 그릇을 주문했다. 따뜻한 국물에 얹힌 얇은 쇠고기, 신선한 고수와 민트, 라임 한 조각—입안에 퍼지는 그 향긋함과 부드러움에 나는 한순간에 빠져들었다. 그 한 그릇이 내 ‘베트남 요리 여행’의 시작이었다.
■ 맛의 향연, 균형의 미학
베트남 요리를 처음 접하면 가장 먼저 놀라는 건 맛의 균형감이다. 자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전혀 과하지 않고, 향이 강한 듯하지만 입에 착 감긴다. 짠맛, 단맛, 매운맛, 새콤함이 마치 악기처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멜로디를 완성하는 느낌이다. 이러한 균형감은 **느억맘(Nước mắm)**이라 불리는 발효 젓갈 소스와 라임, 고추, 설탕 등 다양한 조미료의 섬세한 배합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하노이의 재래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손수 말아준 고이꾸온(Gỏi cuốn). 투명한 라이스페이퍼 안에 새우, 쌀국수, 각종 생야채, 고수가 가지런히 말려 있었고, 곁들여진 진한 땅콩 소스는 고소하면서도 단맛과 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입안 가득히 퍼지는 그 신선한 향과 맛—이 한 입에 베트남 요리의 진수가 담겨 있었다.
■ 건강한 식재료, 최소한의 조리
베트남 요리의 또 다른 강점은 건강한 재료 사용과 조리법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기름기가 적고, 야채가 풍부하게 들어간다. 조리 방식도 간단하다. 찌거나 삶는 경우가 많고, 튀김조차도 담백하다.
그들이 즐겨 쓰는 주요 식재료는 다음과 같다:
- 쌀: 베트남 요리의 주인공. 국수(퍼, 분), 밥(껌), 라이스페이퍼(반짜, 고이꾸온) 등 형태도 다양하다.
- 허브와 생야채: 고수, 민트, 바질, 라임잎, 상추, 숙주 등은 거의 모든 요리에 필수. 생으로 먹으며 향과 식감을 더한다.
- 해산물과 육류: 새우,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가 자주 쓰인다. 특히 돼지고기는 구이, 찜, 볶음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 느억맘: 발효된 생선으로 만든 젓갈. 거의 모든 소스의 기본 베이스이며, 풍미를 결정짓는 핵심 조미료다.
- 열대 과일과 채소: 파파야, 망고, 바나나꽃, 라임, 코코넛, 연근 등은 샐러드나 디저트, 소스에 활용된다.
- 견과류와 땅콩소스: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한 재료로, 특히 고이꾸온과 잘 어울린다.
베트남 요리는 조리보다는 조화에 가깝다. 익히기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향은 허브와 채소로 내며, 간은 느억맘으로 절묘하게 맞춘다. 그래서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부담이 없다. 나는 여행 중 매 끼니를 먹고도 전혀 더부룩하거나 피곤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 지갑도 반가운 ‘가성비 요리’
여행자로서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베트남 요리의 가격이다. 현지 식당에서 퍼 한 그릇은 30,000동(한화 1,500원) 수준, 반미는 길거리에서 15,000동(약 800원)에도 맛볼 수 있다. 이처럼 부담 없는 가격에 풍성한 한 끼를 즐길 수 있으니, 매번 식사 시간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반쎄오’나 ‘분짜’처럼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이 들어가는 요리도 생각보다 저렴하다.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며, 가격까지 착하니 베트남 음식은 가성비 요리의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단순한 요리가 아닌 문화의 정수
베트남 음식은 단지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 안엔 역사와 사람, 철학과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퍼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바게트 문화와 현지 쌀국수가 만난 결과이고, 반미는 프랑스 바게트를 베트남식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음식 속에 문화가 녹아들고, 골목마다 음식이 곧 사람들의 삶이 된다.
맛있고, 건강하고, 가격도 착하다.
베트남 요리는 이 모든 매력을 갖춘 ‘완전체 요리’다.
그 한 그릇 속엔 열대의 향기, 역사와 기억,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삶이 담겨 있다.
나는 지금도 베트남 골목 어귀에서 퍼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미소 짓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진짜 여행은, 입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름편에는 베트남 요리 10선을 소개합니다.
김일권 여행작가 /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네이버 블로그 : 찐종여행기 / 티스토리 : 챕터투 Evergreen 유튜브 : 챕터투 Evergreen (김상무 중국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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